소행운 blog



이전 글🚗
금쪽같은 내 새끼 나가면 말로 후드려맞을 조선 왕 3대장(1)











1623년 4월 11일


학생들이 낮에 벚꽃놀이 가서 놀다가
자기 전에 갑자기 중간고사 생각이 나서 벼락치기하는 늦은 밤,








다녀오세요~~! 올 때 메로나

12세 소년은 밤늦게 나가는 아빠를 배웅한다






(대충 배웅하는 아들 보고 웃는 아빠)





소년의 아빠는 그렇게 부하들을 데리고 창덕궁으로 가
돈화문 문을 도끼로 부수고 나라의 주인을 쫓아내니







그가 바로 능양군, 조선 제 16대 국왕 인조(1623~1649)다.






인조반정: 조선 4대 반정 중 하나로 서인 반정세력이 광해군과 대북파를 축출하고 능앙군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


반정의 명분은

1. 광해군이 적모를 유폐하고 동생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2. 명나라 은혜를 버리고 후금과 가까이했다는 이유였는데...






이제 날이 밝으면 조선의 새 주인이 될 이 남자는 몰랐을 것이다









그 명분.. 이제 지한테 돌아오고 할아버지 선조랑 투탑으로 국민찐따가 된다는 걸...












아까 배웅하던 어린이는 아빠 덕에 왕자님이 되어
몇 년 지나 세자로 책봉되니 바로 소현세자다








당시 정세는 후금이 성장하고 명이 망해가고 있었다

명은 줄줄이 싸패 황제가 즉위한 데다가 왜란때 병력도 잃고 이거저거 다 망해가서 후금한테 맨날 후드리찹찹 맞고 있었음







우리 도와줬는데 헙..

우리의 친명배금 의리남 인조와 신하들은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정세? 우린 그런 거 몰라 무족권 명나라편 들어줘
(근데 명은 인조보다 광해군 좋아한게 함정)









그렇게 명나라를 사랑하고 후금이랑은 외교를 끊어버린 결과







광해군 복수와 모문룡 내놔악!!!을 외치며 후금이 쳐들어온게
정묘호란(1627)
모문룡: 후금을 피해 평안도 가도에 숨어있던 명나라 깡패놈



싸우다가 넘 길어지니까 화의 맺고 철군시키는데 조선과 후금의 화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 우리 형제관계 하자, 명이란 친한 건 안 건드릴게 우리랑도 친하게 지내쟝, 그리고 너희 왕자 한명 인질로 보내라






우리의 친명배금 의리남 인조는 먼 친척을 동생으로 속여 보내는 혐-금 클라스를 보여준다

사실 반정 명분때문에 강제로라도 배척해야 함







그렇게 9년 후,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더 강해져선 군신하자고 사신을 보내는데







의리 빼면 시체인 인조는 사신을 박대하고 홍타이지에게 투명도 30정도의 은은한 뻐큐가 보이는 격문을 보내 도발함 (.....)





그렇게 터지는게 병자호란(1636~1637)


다 알다시피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0여일을 버티다 내려오고 삼전도의 굴욕을 겪는다

* 소리 날 때까지 이마를 찧어서 피가 났다던가 그런거 헛소문이고 걍 청나라 인사법대로 함







청나라 색희들..
항복 받고 돌아가면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부부, 주전파 신하, 대신 자식들 그리고 백성들을 포로로 데려간다








흐엉 내 새끼들 엉엉

소현세자, 봉림대군은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년도 안됐는데..
그 상황에 인질로 적국에 가다니 맴이 찢어지는 아빠 인조


인조는 청나라 도르곤에게 '세자는 몸이 약해 추위를 타니 온돌방에 재워달라'고 간절히 부탁함





근데 왜 이 글에 인조가 나와ㅜㅜㅜㅜ 선조랑 다르자나..!!!!











...?!!

소현세자 잊지마

이 글 금쪽이는 당신이니까...













소현세자는 정묘호란이 나던 해 세자빈과 혼인하고(1627) 병자호란이 나던 해에 아들(원손)이 태어났다(1636)


... 인생 중대사가 하필 그런 해에 일어났네,,?






25살 나이에 청나라 볼모로 잡혀가게 된 세자는 포로 일행과 1700리 길을 걸어 청나라 심양관으로 간다









<심양에서 소현세자와 일행들이 받을 스트레스 목록>


1. 향수병, 음식 ㅈㄴ 안 맞음

1n첩 반상으로 한식 먹던 애가 매일 기름기 가득한 띵호와 중식반점이 입맛에 잘 맞을 리가 없다
대한항공 고추장이라도 챙겨갔어야 ..


조선으로 보내는 심양관 보고서에는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질병 기록이 한~ 가득하다

봉림대군은 그나마 힘캐라서 (...) 적은 편임
이쪽은 근수저가 울분을 헬스로 푼 케이스








2. 세자 부부의 주말 농장 아니.. 생존 농장

당시 청나라는 기근에 시달려 식량난이 일었다
그래서 홍타이지는 땅을 주며 자급자족하라고 함


이 앞짱구 대머리놈들이 치사하게 농사도 안 지어본 뉴비에게 자급자족을 하라니..
심보를 곱게 써라 그러니까 해란주가

하하 아무 것도 아닙니당 호호





근데 세자 부부는 재능이 있었는지 농사를 대성공하고 심양관 사람들이 모두 먹을 정도의 수확을 얻는다

잉여분을 팔아 심양에 포로로 잡혀온 조선 사람들을 데려오고 그들이 일해서 얻은 수익으로 다시 조선 사람들을 데려와 순환 경제를 이룸






이후 엄청난 수확량을 얻어 조선으로 돌아올 때쯤 소현세자 부부는 엄청난 재력가가 됐다고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케이스









3. 청나라 행사 있을 때마다, 연회 열 때마다 홍타이지 사냥갈 때마다 불러재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 한달에 3번 열리는 아침 회의에 참여하고
  • 청나라 행사마다 다 가야했으며
  • 친왕들이 여는 연회에도 자주 초청됐다


그 과정에서 나잇대가 비슷한 아지거, 도르곤이랑 친해져 주요 정보를 미리 알고 조선으로 보내기도 함


홍타이지가 사냥 나갈 때마다 불러대서 말타고 나가야 했는데 세자는 승마가 익숙하지 않아 자주 낙마했다고 한다




이렇게 회식, 사내 동호회, 산악회 좋아하는 애들이 특히 데리고 가는 곳이 있었으니









4. 명나라 정벌 전쟁 필참

충격파를 주려는건지 명나라 깨부수고 다니는 전투엔 소현세자를 불러 같이 출정하도록 했다


특히 도르곤은 마지막으로 북경을 함락시킬 때 소현세자를 데리고 가 그 현장을 보게 만들었다. 즉 소현세자는 명청교체기를 모두 지켜본 것

그렇게 세계관 최강자 명나라의 부패와 고작 농민 반란에 망해가는 모습은 소현세자와 일행들의 콩깍지를 벗겨냄





여기서 또 명나라 정벌 전쟁에 반드시 군사를 보내야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












5. 청나라 놈들은 조선의 반청 신하들을 데려와 심문할 때마다 또 소현세자를 꼭 불러댐


조선에는 김상헌이라는 신하가 있다



그의 주요 어록

예로부터 죽지 않는 사람 없고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 죽고 망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반역을 따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
나라가 망할지언정 명을 따르겠다 할 정도로 명분론자인데다
병자호란 당시 울면서 항복문서를 찢어버릴 정도로 충신이었다







혐-청 클라스 no.1 김상헌

명나라 정복 전쟁에 조선군을 출정시키라는 말을 듣고 열렬히 반대하다 청으로 잡혀간다









조선에는 최명길이라는 신하가 있다

주화론자 중 하나로 남한산성에서 인조에게 항복을 건의한 충신이었다 (그때 항복 안했으면 조선 망함)







물론 그때 쓴 항복문서 .. 김상헌이










어쨌든 최명길은 호란 후에 비밀로 명나라에 편지를 보냈다가
(횡의사건)








청나라로 잡혀간다









그리고 그 둘의 심문 현장에 또 불려나온 소현세자


심양에 막 도착했을 때 주전론을 펼치던 삼사가 처형 당하는 걸 지켜봐야 했던 소현세자는 이후 각종 연회에서 친해진 청나라 고관대작들에게 간절히 부탁하여 이렇게 줄줄이 청으로 잡혀온 조선 신하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동분서주했다

이 둘과 횡의사건으로 잡혀온 조선 신하들은 다행히 몇년 옥고를 치룬 후 조선으로 돌아간다








6. 조선과 청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


세자저하..
청나라 색희들 공물에다가 수군 출정에.. 조선 등골이 부러질 거 같으니 그놈들이랑 말 좀 잘해주세요






세자님아 어쩌고저쩌고 조선 사람 말 안 듣는데 어쩔거냐

이거저거 ㅎㅏ기로 했잖아 설마 너네 아직도 명나라 사랑하냐? 그 Xx보다 내가 못한게 뭔데 말 좀 해봐






청나라 애들은 인조가 아닌 세자와 대화하고
세자가 직접 조선에 명령하길 바랐다


하지만 조선 세자는 배우는 자리일뿐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법..

조선을 위해 열심히 변명하는 방법 밖엔 없었음









슬슬 답답해진 청나라는





엥 ?????

인조에게 입조(왕이 직접 청나라로 오삼)하라는 말까지 한다














이제 슬슬 금쪽이 아빠 나올 때가 됐다
인조는 점차 소현세자의 모습이 맘에 안 든다







고려 충렬왕과 충선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원 간섭기 시절 충선왕은 고려 세자로써(당시 세자는 볼모로 원에 보냄) 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극강친원파였고 아버지 충렬왕과 대립하여 아버지의 수족을 다 죽여버렸다
사실 이쪽은 아들이 혼혈이라 걍 원나라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무엇보다 정축화약(1637) 당시 홍타이지가 남긴 말은 인조를 더 떨게 만들었다

만일 그대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짐이 인질로 삼은 아들을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할 것이다.


심지어는 범문정이 인조가 항복했을 때 세자로 왕위를 교체했어야 한다며 후회했다는 말까지 전해졌고
염려증 쩌는 신하들은 인조가 납치될 수도 있다며 전전긍긍함
눈새들







뭐하고 다니는거야 도대체?!

이 상황에 세자의 심양관 운영비용이나 청과의 교섭비용이 다 조선에 청구되어 부담이 막중했고 세자가 청 고관대작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


점점 동태눈깔이 된다







세자는 심양 생활 중에도 단 2번 휴가삼아 조선에 돌아왔는데







소현세자 휴가 1트(1642)

울히 아들램 ㅠㅠㅠㅠㅠㅠ 어서 오고 잘 쉬다 가 ㅠㅠㅠ

사실 휴가 협상한 신하에게 니맘대로 협상하냐고 ㅈㄴ화냄








소현세자 휴가 2트(1644)

동태눈깔 등장


당시 세자빈 강씨가 부친상을 당해 조선으로 보내준건데 인조는 세자빈이 빈소에 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신하들 님 좀.. 너무한듯... 하며 당황스러워 해도 씹고 휴가가 끝날 때까지 세자를 만나지도 않음










그리고 대망의 소현세자 일행 컴백홈(1645)

시간이 흘러 홍타이지가 죽고 섭정왕이 된 도르곤은 명 정벌이 끝나자 세자 일행을 완전히 조선으로 보내준다




소횬~~ 잘 가쇼~~~

그렇다. 이 도르곤이 바로 형수 대옥아를 사랑해서 조카의 후견인을 자처한 그 섭정왕 도르곤이였삼









인조는 세자 일행의 귀환 소식을 듣고 그닥 반갑지 않다
의심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문물과 서양 서적들을 가지고 귀국하는 소현세자

이제껏 보고 배워온 청나라의 이점을 조선에 적용시켜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을 기대하고 돌아옴


명 북경 함락 당시 아담 샬과 만났던 소현세자는 과학, 천문서적, 천구의 등 다양한 문물을 받았고 천주교, 서학에 대하여 알게 됐다고 한다 거의 뭐 유학생





그러나 소현세자의 상상과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신하들아 귀국한 세자한테 하례할 필요 없음
아니 저 물자는 또 뭐야 아 ;;;



북경의 물화(物貨)를 많이 싣고 왔으므로 사람들이 매우 실망했다.(1645년 3월 9일 등 '인조실록')


전일 세자가 심양에 있을 때 집을 지어 단확(丹艧)을 발라서 단장하고, 또 포로로 잡혀간 조선 사람들을 모집하여 둔전(屯田)을 경작해서 곡식을 쌓아 두고는 그것으로 진기한 물품과 무역을 하느라 관소(館所)의 문이 마치 시장 같았으므로,
상(인조)이 그 사실을 듣고 불평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상의 행희(幸姬) 조소용(趙昭容, 귀인 조씨)은 전일부터 세자 및 세자빈과 본디 서로 좋지 않았던 터라, 밤낮으로 상의 앞에서 참소하여 세자 내외에게 죄악을 얽어 만들어서, 저주를 했다느니 대역부도의 행위를 했다느니 하는 말로 빈궁을 무함하였다.
(1645년 6월 27일, 인조실록)







흐엉 내 새끼들 엉엉

그렇다
내 새끼에서 이 새끼가..? 로 변해버린 인조의 마음

온돌방이 뭐야 이제 동궁 구들장 빼고 싶어짐






돌아온 고향과 아버지의 품은 옛날의 따뜻한 모습이 아니었다







ㅎㅇㅎㅇ

아버지껜 총애하는 소용 조씨가 있었는데 입을 잘 털었다
안 그래도 아들을 정적으로 생각하는 인조에게 이간질을 해댐



위의 내용도 그렇고 실록에 대놓고 '성품이 간사하여 왕의 총애를 믿고 자신이 싫어하는 이들을 모함했다'고 적혀있다

사관이 인정한 또라이









하지만 인조는 더이상 세자를 괴롭히진 못했다








세자는 귀국한지 3달도 안되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소현세자의 죽음은 조씨의 명령을 받은 의관 이형익이 어쨌다거나 인조의 독살이라는 등 여러가지 설이 많다

확실한 건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몸이 많이 상했고 귀국 후에도 줄곧 증상이 안 좋았다는 것




실제 소현세자 사후 그를 설명하고 있는 인조실록 기록


...

세자가 10년 동안 타국에 있으면서 온갖 고생을 두루 맛보고 본국에 돌아온 지 겨우 수개월 만에 병이 들었는데, 의관(醫官)들 또한 함부로 침을 놓고 약을 쓰다가 끝내 죽기에 이르렀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슬프게 여겼다. 세자의 향년은 34세인데, 3남 3녀를 두었다














여기까진 뭐 독살일 뿐 인조는 뭐 냉대 밖에 안했다
선조에 비하면 선위소동도 없고~ 편애도 없고~








더이상 세자를 괴롭히진 못 했다고 했지
안 괴롭혔다고 하진 않았다








인조가 진짜 괴롭힌 건 세자빈 강씨와 아이들이다












종법상 맏아들이 죽으면 맏아들의 맏아들이 후계자가 된다.
영조-사도세자(세자)-정조(세손)이 올바른 경우
사실 이쪽은 아들이 더 없었기도 했고







킹치만 우리 인조는 차남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는다



인조는 한 신하가 원손을 왕세손으로 삼으라고 상소를 올리자 차마 듣지 못할 하교(보통 쌍욕)를 했다고 한다

그냥 원손이 나이가 어려서 차남을 세자로 삼았다고 하면 신하들이 그래 뭐.. ㅇㅈ.. 해줄텐데 굳~이 원손이 어리석어서 세손 못 시킨다고 했다가







왜 우리 원손 기를 죽이고 그래욧!!!

세손 가르친 쓰앵님이 빡쳐서
내가 가르칠 때 똑똑했는데 왜 그래욧!!!!! 하며 열렬히 반대한다







(당황)

그제서야 본인이 나이가 많고 원손이 많이 어려서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기 힘들다고 함

인조는 꼭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갔다가 쪽 당하는 일이 많다






위에 병자호란이 일어난 해에 태어난 원손이 바로 경선군이다

이처럼 나이가 어린 원손(9)은 어디 날라리짓을 하지도 않고..
세손 시키기 싫은데 잘못한 점을 찾기 너무 힘든 아이였다









쓰레기야!

그래서 원손의 엄마인 세자빈 강씨를 건들임









왕실에는 궁중 여인들을 이유없이 죽이는 유명한 스킬이 있다





소용 조씨: 누가 나 저주했어용..!!!!



그거슨 바로 저주 누명 씌우기

이 누명을 세자빈 강씨(이하 강빈)에게 씌워 그녀의 궁녀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강빈을 후궁 별당에 가둬버린다




그리고는 강빈과 대화하면 가만 안 둠-_- 선언

~ 상이 궁중의 사람들에게 “감히 강씨와 말하는 자는 죄를 주겠다.”고 경계하였기 때문에 ~ (중략)






영문도 모른 채 가까운 궁녀들을 잃고 별당에 갇힌 세자빈
아직 남편이 죽은지 1년도 안된 데다가 이 일로 강빈의 오빠 4명이 유배형에 처해졌다




소용 조씨 저주사건은 물증이 없고 자백하는 사람도 없어
그냥 끝인가 했지만 인조는 며느리를 정말 죽이고 싶었나보다









1646년 1월 설날 연휴



내 수라상 전복구이에서 독이 나왔삼...!!!!!!






허거덩!!!






근데 며느리 세자빈 강씨가 범인인 거 같아 ㅎㅎ
걔 궁녀들 데려가서 족쳐






응???

인조는 자기 수라상에 독이 나왔는데 내전궁인과 수라간 궁인보다 며느리를 먼저 터는 지랄을 뽐낸다
그것도 공식수사가 아닌 내시를 통한 비공식 조사


신하들도 웬만히 병신이 아니고서야 기이함을 느끼고
얼른 의금부로 넘겨 공개로 수사하라고 건의하지만 인조는 고집부리다가 열흘이 지나서야 넘긴다




당연히 의금부 조사에서 증거 없고 자백도 없음

잡혀간 강빈의 궁녀들 중 대부분이 죽을 정도로 혹독히 고문했지만 거짓 자백조차 없었다







아!! 아무튼 걔가 범인 맞다니까!!!
세자랑 세자빈은 청나라에 있을 때 곤룡포도 만들어 입고!!

왕과 왕비의 호칭도 썼을 뿐만 아니라 승질도 내고(대전에 와서 저를 못 살게 구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은 것) 작년부턴 나한테 문안도 안 오더라니까??

사형감이야 죽여







갇혀있는데 어케 문안을 가냐




1. 곤룡포(홍금적의)는 명나라 옷인데 청나라에서 그 옷을 만들어 입을 리가 전혀 없고 전쟁날 일 있나

2. 왕과 왕비 호칭은 청나라 색희들이 부른거지 본인들이 원한 거 아니라고 보고서에 잘 써져있으며

3. 저주 사건 이후로 별당에 갇혀있어서 문안 못 감





여기서 더 나아가면

3-1. 이때 강빈이랑 대화하면 벌준대서 다들 눈치보는데 전복구이에 독을 넣어달라 말할 수도 없었고
4. 인조 죽일 이유가 없으며 뭐 찔리는 일 있니
5. 죽여도 봉림대군이 왕이 될텐데 어케 죽여요












슬슬 인조의 고집을 꺾을 방법이 없겠다 싶었던 신하들은 그럼 사형만은 시키지말자고 설득하는데


한 신하가 "그래도 자식인데ㅜㅜ 세자의 아내니까 전하의 자식이잖아요ㅜㅜㅜ" 하며 정으로 호소한다

갑자기 인조는 날 모욕하는 거냐며 펄쩍 뜀







개새끼 같은 것을 억지로 임금의 자식이라고 칭하니, 이것이 모욕이 아니고 무엇인가?
(狗雛强稱以君上之子, 此非侮辱而何?)




이 개새끼가 바로 조선왕조실록에 유일하게 적힌 욕이다
물론 왕들도 욕은 했지만 사관이 순화해서 적어줌 개새끼보다 더 심한 욕이어서 순화된 말이 개새끼일지도



방해물 다 때려팬 태종도, 성격 드러운 연산군도, 심지어 자기가 쫓아낸 의심증 광해군조차 실록에 욕이 박제되진 않았다








그렇게 강빈은 36살 나이에 저주사건, 전복구이 독사건 누명을 쓰고 폐위된 후 사사 당한다



이후 인조는 강빈이 '소숙과 조소용 땜에 죽었으니 원수를 갚아달라'는 혈서를 남겼다며 강빈의 세 아들을 제주도로 유배시켜버린다

뿐만 아니라 강빈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이미 죽은 강빈의 아버지를 무덤에서 꺼내 부관참시까지 함

물론 그 혈서를 본 사람은 인조뿐






앞으로 인조를 선조보다 술래잡기도 못하고 이간질에 놀아나는 찌질이라고 놀리지마라..







조선 유일하게 세자도 안해본 심지어 대군출신도 아닌 군군따리 아버지 왕으로 추존하고 며느리랑 손자 골로 보낼 때 속력 Max 찍는

추진력 甲 임금이니까..







소현세자와 강빈의 세 아들은 1년 새에 부모님을 줄줄이 잃고 제주도로 유배까지 가야했다

이들은 당연히 인조의 친손자다 (...)



이후 청나라 사신으로 온 용골대가 소현세자 부부의 소식을 듣고 '세자의 아들을 양자로 삼고 싶다'고 하자

인조는 "셋 중 둘은 이미 죽었소이다!" 라고 답했다
아직 안 죽었는디

이후 정말로 첫째 경선군(12)과 둘째 경완군(8)이 죽는다








세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 경안군(4)은 숙부 효종 대에 유배지를 옮겨오지만 22살 나이에 요절함







인조가 승하하고 즉위한 봉림대군, 즉 조선 17대 국왕 효종

귀인 조씨(그새 승급함) kill, 김자점 능쥐처참
경안군 유배지에서 나오게 해줌



다 해주지만 딱 하나는 안 해준다








강빈 넘 불쌍한데 신원 회복해주시옵소서~~!






ㄴㄴ 이제부터 역강(逆姜)이야기 꺼내는 놈도 역적
역강: 역적 강씨라는거임 하하









어느 날 효종은 구언의 명을 내린다

이건 대놓고 임금 비판하라고 판 깔아주는거고 여기선 뭔말해도 웬만해선 벌 안 내림






ㅎㅎ 쓴 소리 해보시오..!!







김홍욱: 강빈 넘 억울해여







아 ;;; 너 사형






그렇게 황해감사 김홍욱은 진짜 곤장맞아 죽는다 (...)
김홍욱은 역강 발언할 때 외지에 있어서 진짜 몰랐다고


이후 효종은 죽을 때까지 '다 좋은데 김홍욱한텐 개심했다'는 상소와 간언에 시달림











뭐 이번에도 그다지 자식은 잘못이 없다
금쪽같은 내 새끼 사연신청될 건덕지가 없음







할아버지 선조는 여전히 안녕하세요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울히 인조는 어디 나가야하느냐


말도 안되는 귀납적 추론을 해보자
강빈에게 개.. 뭐라고 했으니 갱얼쥐와 결혼한 사람도 갱얼쥐다
그렇다면 갱얼쥐의 아버지도...?











그래서 인조는 개는 훌륭하다에 출연시켜보자






(당황)





어디보자... 며느리 강(姜)빈과 가족들을....






.....





.........






..............








강(姜)형욱: ......








솔루션 중단



































<TMI 시리즈>




인조는 이 악물고 밀어붙여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했는데
부모님 원종과 인헌왕후의 왕릉은 지금 검단신도시 고층 아파트의 왕릉뷰가 되고 있다 (...)







인조는 호란 이후 백성들 사이에서 우리 임금님이 잘하는 건 얼굴밖에 없다는 뒷말이 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인조, 능양군 역할한 잘생긴 배우 사진을 넣음 하하

도루묵 야사의 주인공이다

  • 피란 중에 먹은 존맛 생선 이름이 고작 묵어라길래 은어화로 고쳐 부르라했다가 전쟁 끝나고 먹으니 노맛이어서 다시 묵어로 부르라고(도루묵) 했다는 이야기







숙종 대에 소현세자의 유복자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근데 금방 구라인 거 들켜서 참수당함


그는 갑자기 왜 소현세자 아들인 척을 했을까?

당시엔 소현세자와 강빈의 아들이 하나 더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느 날 땡중 처경이 한양 거리를 지나는데 대갓집 여종이 깜짝 놀라며 물어본다

'소현세자의 유복자가 혹은 물에 던져졌다고도 하고, 혹은 생존해 있다고도 말하는데, 이제 스승님의 얼굴이 매우 청수하여 왕자(王子)·군(君)의 얼굴 모습과 비슷하니, 혹시 그렇지 않습니까?'
숙종실록, 숙종 2년 11월 1일


그렇다..

어떤 여자가 어? 너 얼굴 존잘인게 소현세자랑 존똑인데 혹시 그 아들 아니야..?! 하며 물었고


자기랑 소현세자가 닮은 걸 알게 된 땡중은 그걸 이용해서 왕족이 되어보려고 사칭한 것이다





결론은 소현세자가 .. 깔끔미남이라는 것...

그거 하나만 알고 간다..







끝을 알고보니 너무 안쓰러운 소현세자와 강빈 부부

다행히 막내 경안군이 아들을 낳고 죽어 대가 이어지는데 왕실 어른으로 높은 대접도 받지만



지만..


...



세자의 후손이라는 신분 때문에 뭔 일이 많다 경종 대에 소현세자의 후손인 밀풍군 이탄을 경종의 양자로 들이자는 세력이 있었고(경종이 자식이 없어 당시 연잉군이던 영조가 왕세제 역할을 함)

이후 영조가 즉위하자 밀풍군을 추대하려는 이인좌의 난에 얽혀 결국 자진을 명받는다 자살엔딩



근데 동생 밀운군 이훈도 이후 역모사건에 얽혀 죽고 철종 대에도 소현세자 후손이 역모에 얽힌다(...?!)





끝으로 철종 대에 소현세자 후손인 풍선군은 자식이 없어 양자를 들이는데

그 양자가 ㅈㄴ 미친 개또라이 친일파가 됨


ㅅㄱ







.....








역강 드립을 친 효종


잘생겼는데 스스로도 얼굴이 맘에 들었는지 자주 거울을 보며 나르시즘에 빠졌더라는 야사가 유명하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체형인데 운동을 좋아했다고 한다. 근수저가 헬스까지 했으니 ...
- 언월도랑 철퇴 휘두르는게 취미였고 효종의 무기와 갑옷이 너무 무거워서 사후에 힘센 무인들조차 못 들었다고 함


애처가, 원앤온리, 자식사랑, 술 안 좋아함







심철동은 심익현의 아명


그 유명한 고양이 집사 공주의 아버지이자
심서방 간담이 서늘해지는 편지의 주인공

이것도 효종이다 하하





ㅎㅎ 할아버지 불만 있으신지..?


끝으로 강빈은 효종의 손자 숙종이 보란듯이 강빈의 신원을 회복시켜(!) 억울함을 ㅇㅈ해주면서 마무리
효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