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운 blog

 

 

 

주몽은 어려서~ (아빠는 모르겠고) 엄마랑 부여 궁궐에서 살고요~~

 

 

 

넘 슬펐겠당

계모는 없는 거 같던데 일단 친형은 아닌 형들한테 구박받으면서 말 키우고 살았더래요~~

 

 

 

 

샤바샤바 아이샤바 얼마나 빡쳤을까요

샤바샤바 아이샤바 그래서 튀어나와 나라를 하나 세우는데

 

 

 

 

 

 

그게 고구려다

 

정말 저세상 가출 스케일이 아닐 수 없다

 

 

 

 

 

 

 

신하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은 졸본천 근처에 자리를 잡고, 비류수가에 초막을 지어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정했다

 

 

 

 

 

우리만 사는 거 아니였나 .. 쩝...

어느날 비류수에 채소잎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누군가 살고 있음을 깨닫곤 구경간다

 

 

 

"비류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나는 여기서 대대로 왕노릇하고 있는 비류국 왕, 송양이오! 그러니 얌전히 내 밑으로 들어...."

 

 

 

쌉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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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기록
 임금은 비류수 가운데로 채소 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사냥을 하며 찾아가서 비류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 왕 송양()이 나와서 보고 말하였다.
“과인이 바다의 한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일찍이 군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오늘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또한 다행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대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

임금이 대답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모처에 와서 도읍을 정하였다.”

이에 송양이 말하였다.
“우리는 여러 대에 걸쳐서 왕 노릇을 하였고, 땅이 작아서 두 왕을 용납하기엔 부족하다. 그대는 도읍을 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우리의 속국이 되는 것이 어떠한가?”

임금은 그 말에 분노하여 그와 말다툼을 하다가 서로 활을 쏘아 재주를 겨루었는데, 송양은 대항할 수 없었다.


송양 개안습

 

 

 

 

 

비류국은 그렇게 고구려가 최초로 정복한 나라가 되어 고구려 5부족 중 하나로 들어가 굉장히 굉장히 대접받고 산다

 

 

이후 말갈(한반도 일대의 위말갈)을 때려잡고 행인국도 때려잡고 북옥저도 굴복시키고 ..

노빠꾸 고구려 시조답게 주변에 거슬리는 놈은 다 팼다

 

 

 

그러다 부여에서 낳는 아들인 유리가 증표인 칼을 가지고 내려와 퍼즐을 인증하며 주몽의 후계자가 되었고

 

 

 

이에 위기를 느낀 비류와 온조가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내려가 백제를 세운 건 🔗유명한 이야기

 

 

 

유리가 아빠찾아 고구려로 내려오고 그를 태자로 세운 해

주몽은 40세의 나이에 인생 노잼을 느끼고 졸본 동쪽에서 용 머리를 밟고 하늘로 갔다고 한다 (광개토대왕릉비 기록)

 

 

 

 



그렇다면 이제 퍼즐왕자 유리네 이야기를 들어보자




유리왕은 '유리'라는 이름도 존예인데다

 

떠난 연인을 붙잡으러 갔다가 실패하고 쓴 시가 모든 출판사 국어책에 박제되어 부드러운 이미지가 있지만

 



 

그는 아들에게 자결을 명한 비정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부제: 고구려판 영조와 사도세자)

 



 

유리왕에게는 3명의 태자가 있었는데, 첫 태자 도절은 부여에 인질로 가는 것이 두려워 거절하다 부여의 보복 전쟁을 겪고 다음 해 1월에 죽었다

(당시 부여 국력이 매우 강해 고구려 태자를 인질로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자 전쟁을 일으킨다. 다만 대소왕이 멍청하게 겨울에 전쟁을 일으켜 폭설로 인해 부여 패전)





이후 새로 태자가 된 해명
해명태자의 무예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은 황룡국 왕은 그에게 튼튼한 활을 선물하는데

 

 

 

패기넘치는 해명은 남의 나라 왕이 준 활을 맨손으로 두동강내버린다 (.....)
대충 고구려한테 깝치지 말라는 의미였다고




태자의 결례에 빡친 유리왕은 황룡국 왕에게 저놈의 새끼 데려가서 죽이라고(!)하고
이에 황룡국 왕도 해명에게 화가 나 그를 죽이고자 하지만 늠름한 태자의 태도에 오히려 대접해주고 고구려로 돌려보낸다

이정도면 황룡국 왕이 해명을 용서한 것임에도

 



 

 

유리왕은 끝내 해명을 용서치 않고 칼을 내려 자결을 명한다

이에 해명은 탄식하며 들판에 창을 거꾸로 꽂아놓고, 말을 달리다 스스로 창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나라의 안정을 원했던 유리왕과 주변국을 압도하고자 한 해명
둘 사이는 누구네 집안처럼 망테크를 탔다

 

 


황룡국 사건으로 화산이 터졌을 뿐 이전부터 부자의 갈등이 차곡차곡 쌓여왔다고 추정되며, 일부는 첫번째 태자 도절이 죽은 것도 𝙝𝙤𝙭𝙮..?하는 의심을 품긴 하지만 도절의 사인은 기록되어 있지 않음

 



 

 

두 아들을 홀랑 떠나보낸 유리왕
근데 유리왕이 아들복 쩌는건지 고구려가 왕복이 있는건지

 



 

 

세 번째로 세운 태자가 바로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이다
대무신(전쟁의 신)왕 이름만 봐도 쎈캐인데 본명도 무려 무휼




무휼이 왕자였을 때, 부여가 고구려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협박하는데 유리왕은 아직 국력이 약한 것을 고려해 승낙하고자 한다


하지만 어린 무휼은 부여 사신에게
"계란 쌓은 게 무너지지 않으면 따른다"고 답했다

 

ㅈㄴ강력본드로 붙이지 않는 한 안 무너지는 계란이 있냐..

 



 

 

활 부순 해명은 골로 갔음에도 당시 강대국인 부여에게 덤빈 무휼은 11살이 되던 해에 새로운 태자로 책봉된다

 



 

유리왕이 패드립 들으며 자란지라 부여 패는 건 좋았나보다






하튼 무휼은 그렇게 부여담당 일진이 되어 왕위에 오른 후에도 활약을 펼치는데

 


 

어느 날 고구려 집착남 대소왕은 새 왕이 등극하니 또 시비를 털기 시작한다

"우리 부여에서 몸은 2개인데 머리는 1개인 붉은 까마귀가 발견됐는데 ㅎㅎ 느그가 우리한테 복속된다는 말 아니겠냐 기념으로 까마귀 보낸다 ^.^"


같이 산지직송된 까마귀는 찐으로 몸2 머리1이었다는데 (!) 이를 본 신하들이 웅성웅성거리자

 



 

 부여패기 담당 대무신왕은 웃으며 말한다
"본디 북쪽(부여)은 검은 색인데 검은 까마귀가 남쪽(고구려)의 붉은 색이 되었고, 또 이 상서로운 까마귀가 나에게 왔으니 두 나라의 존망은 ㅎㅎ 알 수 없게 됐소"

 



 

 

이 말을 전해들은 대소왕은 개후회했다고 한다

아 물론 이 고구려 집착남 대소왕은 주몽을 질투해 부여에서 쫓아낸 그 대소왕자 맞다 주몽 손자한테까지 지랄 중



이후 두 나라의 전쟁에서 대소왕은
고구려 장수 괴유의 칼에 맞아 전사한다

(대소왕: ...... )

 



 

대소왕의 죽음 이후 부여는 대소왕의 사촌동생이 1만 명 백성과 고구려로 귀화하고, 대소왕의 막내동생이 따로 갈사국을 짓는 등 내분이 생긴다

 


여기서 대소왕의 막내동생 갈사왕






 

대무신왕은 갈사왕의 손녀와 결혼해

그 유명한 호동왕자를 낳게 되는데...




 

 

 

 


 

 

 

사서에 적힌 대무신왕의 부인은 둘로
원비와 차비 해씨다.


원비는 성씨과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언급이 한번 나오는데
그 언급이 아주 기가 막혀 드라마 악역은 따놓은 당상





 

 

 

 부여 왕실은 해씨 성을 쓴다
대무신왕의 차비는 해씨다 이하생략

생략은 에바고 ^.^ 부여 대소왕의 전사 후, 대소왕의 동생은 세력을 데려나와 갈사국을 짓는데 이 갈사왕의 손녀가 바로 차비 해씨다



 

 

 

 

대무신왕의 첫째 아들은 해씨가 낳은 호동
한국사 최초 역사가 인증한 존잘인데...


어느 날 호동이 옥저에 사냥을 갔다 낙랑국의 왕 최리를 만나고 최리는 호동에게 북국신왕(대무신왕의 별칭) 아들이 아니냐며 낙랑 왕궁으로 초대한다

🔗옥저는 고구려 왕자가 사냥하다 낙랑국 왕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인지요... ㅈㄴ 국방 어디 갔어

 




 

최씨들이 호동한테 뭘 보고 그렇게 빠진건지(얼굴이겠지)
낙랑공주는 첫눈에 반하고 낙랑국 왕 최리는 초면에 호동을 사위로 삼고자 한다

낙랑국에는 전쟁이 나면 스스로 연주되는 북(자명고)과 나팔이 있었는데 고구려는 늘 비옥한 낙랑국 땅을 원했으나 자명고와 나팔 때문에 공격할 수 없었다

 



 

 

낙랑공주의 호감을 본 호동은 낙랑국을 복속시키기 위해
"진정한 내 아내가 되고 싶거든 자명고와 나팔을 부숴주시오" 하며 공주를 부추긴다

 



 

낙랑공주는 결국 자명고와 나팔을 부수고,
낙랑국은 고구려의 공격에 멸망하여 최리는 매국노가 된 딸을 직접 죽이고 처형된다

 



 

 

ㅈㄴ 예쁜 쓰레기..
이제 보니 망할 놈아 망하지마의 표본이네





어쨌든 비옥한 낙랑 정복 1등 공신 호동왕자
거의 뭐 다음 왕 확정 땅땅아닌가요??

 



 

아니었슴다 오히려 낙랑을 얻어 공격의 대상이 됨

원비는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만들기 위해 호동이 계모인 자신에게 다른 마음(?)을 품었다고 몰아가며 누명을 씌운다

호동은 어머니의 악함이 드러나면 아버지가 근심하시니 효가 아니라며 억울함을 해명하지 않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음

 



..
.
.
.

?????

억울해죽겠는데 뭔 효를 챙겨 니 이름 효동이냐

 


호동팬 억장 무너지는 일 :
호동의 자결 한달 후에 원비의 아들인 해우가 태자로 책봉됨

 


 

 

결국 원비는 원하는 바를 이뤘으나 해우가 아직 어려
대무신왕은 동생인 해색주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원비 낙동강 오리알행

 



 

 

형아가 왕위 준 덕분에 왕이 된 해색주
새로 왕이 되어 뭘 해볼려니 이상한 놈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것은 바로 자연재해

즉위 3년동안 대홍수때문에 온 백성이 굶주리고, 뭔 하늘에서 혜성이 내리질 않나(고대에는 혜성이 안 좋은 의미), 심지어 그 추운 북쪽임에도 겨울동안 국내성에 눈이 내리지 않는 등 자연이 드럽게 안 도와준다

시름시름 지쳐갈 즈음, 왕은 동굴을 하나 발견하곤
자신이 죽으면 능묘를 만들지 말고 반드시 이 석굴에 묻어달라고 함

 



 

 

바로 다음 해, 즉위 4년만에 죽어 유언에 따라 그 석굴에 묻히는데 이곳이 민중원이었으므로 왕호가 민중왕이 되었다

민중왕은 자연재해로 엄청 스트레스였을 거 같은데 반대세력이 있었다면(예상가는 부류가 있...) 재해 갖고 하늘의 뜻이 어쩌고하면서 오지게 쪼아댔을듯

 




 

 낙동강 오리알은 다시 기회를 얻어

 



 

 

대무신왕의 어린 태자였던 해우가 왕위를 잇는다
해우는 1년차에 바로 태자를 세워 국본을 바로 잡고 후한을 때려패러 군을 일으키기도 함(요동태수의 중재로 화친)

근데 이때 자연에 뭔 문제가 있었는지 자연재해의 횡포는 계속 돼고...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며 시기를 넘겨내는가했더니

 




 

마의 4년차... 해우는 갑자기 사납고 잔인해진다
사람을 베고 눕거나 앉아 그 사람이 움직이면 베어버리고(!) 간언을 하는 신하는 활을 쏴 죽여버렸다고 함. . . ...

 



왕의 방석 겸 베개로 살던 두로 ●▅▇█▇▆▅▄▇
매일 담걸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해우는 잘 누워있는 두로가 취향저격이었는지
자신이 죽으면 두로도 같이 묻어달라고 한다
(두로 : ;;;;;;;)

 





두로가 담걸린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울고 있던 어느 날,
누군가 다가와 두로에게 "나를 쓰다듬으면 임금이요, 때리면 원수 아니냐? 지금 왕이 잔학하여 백성의 원수가 됐으니 네가 그를 죽여라"고 말한다

 




 

이에 두로는 결심하여 칼을 품고 있다가
왕이 다시 불러 깔고 앉자 칼을 꺼내 왕을 시해했다


 



여기서 모본왕이 역사의 피해자라는 설이 있는데

① 백성을 살피던 왕이 4년차에 갑자기 사나워짐
② 국왕을 시해한 두로가 이후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음
  - 명림답부나 창조리의 경우 다음 왕 즉위 1등공신이 되는데 두로가 환관 쯤의 직위라 해도 왕을 죽인 후 벌을 받았다/잘 살았다 어느 기록도 없음
  - 모본왕이 해씨 고구려설의 마지막 왕이기 때문에 태조왕 세력이 시해에 가담한 거 아니냐는 설


악행이 과장됐든 아니든 최대 20대 초중반일 해우는
최애 베개(?)에게 살해당함으로 굴곡많던 인생을 마치며
모본원에 묻혀 왕호는 모본왕으로 정해진다

 




 

왕이 시해당하고 다음 왕을 찾아야하는데

사람들은 해우의 태자인 익이 어리석다는 이유로
대무신왕의 동생 중 고재사를 왕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에 재사가 말하길 "난. 왕.하기엔. 넘.늙었음."

어쩐지 유리왕 자식들은 같은 배우 사진만 쓰는 느낌



그렇게 딴 사람 물망해야하나 싶던 찰나...

 



 

 ??? (부여 출신, 고재사의 아내)


"우리 아들은 ㅈㄴ 젊으니 우리 애 왕 시켜요"
"오~~~ 아들 몇 살인데???"





 

 

 
"7살"








다음 시간에 계속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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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서가 없기 때문에 여러 권에 흩어진 자료로(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통감, 중국 역사서 등) 알아보는데 서로 내용이 달라 각자 형제가 아니라 부자관계라는 기록도 있다 이 글은 정사인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