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운 blog



요즘 흥하고 있는 드라마 옷 소매 붉은 끝동을 보고 영조와 정조,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면서






영조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무족권 금쪽같은 내새끼 사연 신청되던가 학대로 이미 깜빵 살다 나왔을 거라고 확신했다



사도세자의 광증과 악행이 영조의 학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같은 상황에 처했던 다른 사람들도 사도세자처럼 미치광이가 되었을까? 궁금해서 자식을 끔찍히 미워한 또 다른 사례가 있는지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1.


첫번째 금쪽이 아버님은 바로




정철: 임금님 충성충성

그놈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이 애타게 부르던 "임"






ㅎㅇㅎㅇ

조선 제 14대 왕 선조다


조선 최초 방계출신 국왕 선조(1552~1608)
우린 나중에 철종 고종같은 방방방방계출신 왕이 있다는 걸 알지만 이 시절엔 선조의 경우가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선조는 방계의 적자가 아닌 서자였음



우리의 이순신을 박대한 국민찐따 선조는 초반엔 정치도 잘하고 살기 좋은 조선을 만들었다는데
사실 이 시대는 좌의정 류성룡, 어의 허준, 이황, 이이, 권율, 정철(...) 등 정치, 학문, 문학 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많았다




그러면 뭐함 임진왜란 터지자마자 튀었음

임진왜란 터지기 몇 년전에 기축옥사 일으켜서 죄없는 사람들 다 죽이곤 모르는 척 정철한테 뒤집어 씌운(정철: 임...!!!!) 병크도 있지만 손이 아파서 안 쓴다





도망가던 선조는 왜란 16일차 급하게 둘째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고 나라를 떠맡기는데...








오잉?

그가 바로 고등학교 2학년 1반 이혼(18)
광해군이다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 광해군은 전쟁이 터지자 세자책봉이라니 ㅈㄴ 어이가 없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자고 건의했다가





임......... (또 뭐 쓰지 이제..)

간철(간사한 정철), 흉철(흉악한 정철), 독철(독한 정철) 드립을 듣고 울면서 유배간 정철 아재와 서인들을 두눈으로 봤는데...




* 광해군 건저의사건 : 신성군을 세자로 생각하고 있던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라는 상소를 받고 빡쳐서 다 유배보낸 사건.
이 사건은 사실 기축옥사로 정철에게 원한이 있는 동인 이산해가 '정철이 인빈김씨 모자를 죽이고 광해군을 옹립하려 한다'고 무고했기 때문에 선조가 빡친거다

가만히 있던 광해군은 이후로 선조에게 미움을 받음...








신성군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14세..


영 찝찝하지만 어쨌든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은 도망간 아빠 대신에 분조를 잘 이끌었고 중앙본부가 생긴 조선은 체계를 다시 갖추어 군수품과 군량미를 보급했다.

뿐만 아니라 광해군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의병 활동을 독려했고 의병이 일어나면서 전세가 바뀜




여기서 분조란 조정을 나누어 다스리는 것으로 선조가 있는 의주가 원조정, 세자가 내려간 경기도 이천 부근을 분조정으로 나누어 다스리는 것을 말함.

그니까 원조정은 말만 조정이지 명나라로 튈 생각만 하는 찐따조정, 분조정은 누가봐도 왕처럼 전쟁을 통솔하는 세자의 조정인 것!







이제 조선의 킹아이돌은 광해군
왕족듀스101에서 현재 국왕을 제치고 부동의 1등 차지~!








이로 인해 국민찐따 선조는 아들에게 열등감까지 가진 찐따로 진화한다








띠리롱~! 문자왔숑

야 너 잘났네? 니가 왕해라 선위해줌 ㅅㄱ
- 아빠


.......





살아있는 왕이 왕위를 물려주는 선위는 사실 후계자 또는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해보는 경우가 많았다. 세자와 신하가 선위하지 말라고 엎드려 빌면 임금의 권위가 올라감

반면 선위해준다고 넙죽 받으면 오~ 너 평소에 왕위 노리고 있었구나? 하며 역모죄로 쓱싹

.....


따라서 선위쇼를 할 때마다 광해군은 석고대죄를 했다




실제로 태종이 선위 떡밥을 던져놓고 걸려든 외척과 그신하들 숙청시킨 전례가 있음 (...) 하지만 이 아버지는 아들을 매우 믿어서 진짜 선위해준 엔딩

선조는 조선 국왕 중 제일 선위쇼를 많이 벌인 왕으로 15번이나 선위 소동을 일으키고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에만 5번이나 지랄한다 (사실 이때 초반엔 진짜 왕위 던져주고 튈 요량)







문제는 쇼를 전쟁 중에 벌였다는 것.....
광해군은 이유 모를 미움을 받으며 선위 소식을 들으면 경상,전라,충청에서 싸우다가도 의주로 가서 무릎꿇고

제가 뭐가 부족하고~~ 어쩌고 해서 아직 또 부족하고~~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 있어야 했다.



선조의 맘에 들 때까지







의주는 여기임

한 겨울에 북한까지 가서 눈오는 바닥에 무릎꿇고 열흘을 빌다가 바로 전라도로 내려가서 왜군과 싸워야 하는 삶

..


의주 위치가 딱 건너가면 명나라인게 킹받네





이후엔 광해군이 정비인 의인왕후 양자로 입적되어 호적상으론 적통 세자가 되자 방계 서자출신 대표주자 선조는 더 빡친다










<종전 후 한양으로 돌아와 열등감 표출하는 찌질이 시리즈>




1) 공신 제외, 지난 7년 간의 포상 없음 열정페이

이 열등감은 치사하게 발휘되어 종전 후에 호성공신에 신성군(피난간 그 해에 죽음), 정원군 등은 넣어주고

정작 전쟁터에서 피흘린 광해군에겐 공신은 커녕 아무런 포상 기록이 없다

진정한 열정페이







2) 그놈의 선위

창덕궁 바닥에 꿇어앉아서 이마를 찧고, 있는 잘못 없는 잘못 다 꺼내서 자기 비판을 선조가 맘에 들 때까지 최소 사흘 최대 열흘동안

이후 10번 반복















3) 너랑 같은 색깔 옷 입기 싫어

어느 날 선조는 문득 붉은 곤룡포를 입고 칙서를 받는 광해군을 보고 이유없이 빡친다



생각해보니 동궁 옷이 왜 나랑 같아? 바꿔바꿔

동궁이 칙서(勅書)를 맞이할 때 입을 복장이 어찌 어의(御衣)와 같아서야 되겠는가. 해조(該曹)에 하문하라.




예조는 ㅈㄴ 어이가 없다







왕과 왕세자는 원래 익선관과 곤룡포 같이 입는데여..
오례의에도 조선 곤룡포는 적색밖에 없슴다

예조가 복계(覆啓)하기를,
"《오례의(五禮儀)》 영칙의주(迎勅儀注)에 ‘전하와 왕세자는 다함께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입는다.’고 되어 있고, 달리 강 등의 옷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명회전(大明會典)》에는, 황제·황태자와 친군황세자(親郡王世子)는 모두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는데 황제의 곤룡포는 황색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적색인 것으로 되어 있고, 역시 강 등의 구별은 없습니다.






사이좋은 세종과 세자시절 문종

선조 전까지만 해도 원래 왕과 세자는 같은 옷을 입고 자수의 용 발가락 개수 정도만 달랐다







순회..세자.. 검정.. 유레카!

근데 이 찌질이 선조는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적색 곤룡포 입히기 싫다고 밤낮으로 기록을 뒤져 순회세자가 검정색 옷입은 기록을 토대로 세자 옷 색깔 바꾸라고 명령함


그래서 광해군은 아청색이나 흑포, 감청색 곤룡포를 입었다






그 결과 이후 조선 왕세자들은 쿨톤 곤룡포를 입게 됨

웜톤 선조.. 아청색 곤룡포가 얼마나 갠쥐인지.. 뭇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설레게 할지 한치 앞도 모르고..










4) 2살 아들 세자로 만들고 싶어


옘병

선조는 51살에 19살 새 중전을 들인다
당시 광해군 나이는 28살.. 새엄마가 바로 훗날 원수가 되는 인목왕후

3년 후 인목왕후가 동생을 낳는데 그가 바로 영창대군이다







나 우리 의랑둥이 세자삼고 싶다 정통성 최고잖아
(영창대군은 선조 사후에 붙은 군호이고 이름은 '이의')





선조는 인기가 없어서 기축옥사급 병크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세자 교체는 힘들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광해군 입지를 줄일지, 마음을 아프게 할지 고민하는 어그로 만렙, 저 시대 키보드워리어일뿐..







이와중에 어그로 선조 말을 믿고 아들 이의를 세자로 만들 꿈에 부푼 인목왕후



왕자 이의에게 궁중 법도를 어겨가면서 세자의 옷을 입히고 동궁전 나인 100명을 제멋대로 데려가질 않나 피리부는 중전도 아니고.. 중궁전 나인들이 동궁전 나인들을 무시하거나 광해군 앞에서(!) 거들먹거려도 말리지 않았다.




근데 이후 행적을 보면 걍 눈새였던 거 같기도








마! 석고대죄 좀 한다고 사람 무시하나!

아무리 아빠가 개무시한다지만 소년 구국영웅 광해군

고려 군인으로써 외적과 싸운 태조, 정종을 제외하면 광해군은 조선의 외적과 싸운 유일한 국왕이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조선을 공격하는 외적과 직접 싸운 국왕은 없음 ..!!


민심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붕당붕당 돌을 던지자 선조 몰래 돌을 던지던 당파들도 세자 문제에선 하나같이 광해군을 지지함
살짝 당시 조선 왕실의 DMZ같은 존재








근데 유영경같은 애들이랑 비밀로 세자 교체 논의한 거 보면 꽤나 진심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노양심 왕과 눈새 신하들의 절묘한 조합

선조의 편애에 광해군은 31살 어린 동생의 존재를 더 불편해하고 싫어하게 된다






5) 죽기 직전까지 아들에게 상처주기


선조(宣祖)는 승하 직전 '세자 광해군'이 문안(問安)하는 것을 아뢰면, ' 어째서 세자(世子)의 문안(問安)이라고 이르느냐, 너는 임시(臨時)로 봉한 것이니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말아라 '고 할 정도로 광해군에 대한 감정을 드러낼 정도이었다.

광해군은 이걸 듣고 충격받아 그 자리에서 피를 토했다고 한다




쉬방 그 개고생을 다 했더니 하는 말이........






반면 진짜 숨 넘어갈 때는 유영경에게 이의를 부탁하고
유서에는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이의를 네가 지켜야 된다'는 말을 남겼다.







이산해의 복수로 시작된 광해군 건저의 사건(1591)부터 부왕이 눈을 감는 그 날까지(1608) 그냥 시키는대로 열심히 했을 뿐인데 17년동안 부왕에게 무시받고 냉대받으며 불안한 삶을 살아온 금쪽이 광해군

부왕 말년에는 적통 대군이 태어나 걔 엄마까지도 내 신경을 슬슬 긁는 뭐같은 나날을 견뎌왔을 그는






왕위에 오른 후 여러가지 공과 과를 남겼다

그놈의 정통성 어쩌고하면서 2~3살짜리 동생에게 세자를 주네마네했던 아빠 때문인지 광해군은 왕권 강화를 위해 궁궐건축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민심을 잃고, 심각한 의심증과 왕권 노이로제로 이이첨과 같은 간신과 대북파에게 큰 권력을 주어 당파의 균형을 잃는다

뿐만 아니라 친형 임해군, 능창군(인조 동생) 등 왕가 종친을 숙청했고 결정적으로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인목대비를 폐하고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끔찍하게 죽인 것은 인조반정의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이 의심증이 엄청 심했는지 작은 고변도 옥사로 확대시켜(...) 1달에 10번이나 친국을 할 정도였고 조선 국왕 중 친국 횟수 2등에 랭크를 올린다

1등 영조 401번 (재위기간 51년)
2등 광해군 344번 (재위기간 15년)


이건 걍 1등으로.. ㅇㅈ...







반면 공도 충분히 있다
광해군은 왜란을 온몸으로 겪어 간절히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왜란 이후 LO명나라VE을 외치는 신하들은 친명배금을 주장하며 명나라에 인생배팅하고 있었다

그 주식.. 곧 종이쪼가리되는 줄도 모르고..






“내가 병이 심하고 정신이 혼미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 데도 종묘사직이 위태로운 꼴을 차마 볼 수 없어 나왔다. 이미 답서의 기한(8월 5일)이 지났지만 8월 안으로 보낸다면 혹시 목전에 닥친 전란은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경들은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광해군일기> 1619년 8월 14일)

광해군은 “만약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섬짓하다.(思之膽寒)”고 걱정했다.



요즘에는 전쟁이나 폭격, 총기난사 사건을 겪고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를 권장한다.

저 시대에 그런 치료가 있을 리 만무하고 전란 이후 여러가지 상황으로 인해 의심증과 스트레스만 더해진 광해군은 백성보다 대의명분을 사랑하는 신하들과 일하며 정신병 증세를 겪음

만약 신하들 말대로 저 편지에 끝까지 답장 안했으면 정묘호란은 1627년이 아니라 1619년에 일어났을 것이다



이후에 호란 겪는 거 보면 인조와 서인들이 빡대가리란 건 알겠는데 광해군의 아내 류씨마저 남편에게 친명배금을 권한 거 보면 당시 조선 사회에서 광해군이랑 말 통하는 사람 몇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은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호란 중 복위운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한 인조에 의해 다시 제주도로 유배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세자 시절에 병크가 없었던 걸 보면 금쪽이가 아니라
'아빠가 ㅈㄴ이상해요'로 안녕하세요에 나가는게 맞는 거 같다




어이 프린스 광해
미끄럼틀 타고 내려와....








18세부터 석고대죄하는 광해군 이야기 듣고 우는 게스트




(당황)




이렇게 사연 최고점받고 선조 악플 3000개 받은채로 다음 주 녹화에 뻘쭘하게 또 나와야 함





다음 사연 인조 나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