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운 blog




과연 이 짤 속 배신은 어느 파트였을까..? 
오늘은 신라의 뒤통수에 대해 알아보자

더보기

배신은 농담 반으로 쓰는거고 대부분 정세에 맞춰 살아남고자 하는 신라의 대응들입니다~! 







➊ 고구려: 호우명그릇 반납해

때는 바야흐로 4세기 말~5세기 극초반,
신라는 왜놈들과 싸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하다하다 백제-가야-왜가 연합하여 공격하는 바람에 신라는 망국 3초 전이었는데 ...




백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칼 휘두르던 고구려는
전쟁에 백제 묻었다는 소식에 무려 5만 명을 지원하여 연합군을 싹 쓸어버린다(400년)

* 당시 고구려인들은 백제가 고구려 고국원왕(광개토대왕 할아버지)을 죽인 사건 때문에 백제를 극혐했다
* 광개토대왕 5만 명을 데리고 ‘직접 출정’하여 세 나라를 때려잡음(찐광기)




광개토대왕의 신라 구원 이후, 백제는 한반도 남부 패권을 잃고 3국 연합이 와해됐을 뿐만 아니라 가야 연맹의 대표인 금관가야가 멸망한다

이렇게 고구려 덕분에 망국의 위기에서 벗어난 신라는 이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남진정책을 펼치자
고구려가 극혐하는 백제와 손잡고 나제동맹을 맺음(433년)



.
.
.
.
.





호우명그릇: 고구려가 신라에게 준 한정품 그릇

그릇 다시 내놔

 



더보기

장수왕 대의 고구려가 너~무 막강해서 백제, 신라 중 한 나라만 망해도 모두 정복될 위기였고, 광개토대왕의 신라 구원 이후로 고구려의 내정간섭이 매우 심해 아들 볼모로 보낼 정도였으므로 정세 상 백제와 동맹 맺을 만 하다







➋ 결혼.. 한다며...?? 친하게 지내준다며...???

때는 또 6세기 고구려 안장왕, 백제 무령왕, 신라 법흥왕 시절...

고구려 안장왕 - 무려 6대 간 이어진 전성기 이어가는 중
백제 무령왕 -  그 유명한 무령왕릉 피장자
신라 법흥왕 - 한국사 시험 '이 왕의 업적을 고르시오'의 주인공




하필...... 하필....... . 하필.......................

삼국시대 네임드들이 활동하는 시기에 덜덜 떨고있던 왕이 있었으니 대가야의 이뇌왕이다

나름 500년 이상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음에도 사국(四國)시대 안 시켜주는 것도 서러운데.. 하필 이 시기에 왕을 해먹다니




당시는 맹렬한 고구려의 위세가 조금씩 사그러들고, 나제동맹을 맺은 백제와 신라가 점차 정세를 넓히는 시기였다.
그래도 아직 북쪽은 무서우니까 남쪽(가야)을 열심히 뚜까패고 있었음

뚜까맞던 대가야는 한 가지 해결책을 찾는데


.
.
.




바로 그나마 덜 싫은 신라 놈들과 결혼동맹을 맺는 것!
이뇌왕은 신라에 화친혼을 청하여 신라 이찬 비조부의 누이를 왕비로 맞이한다(522년)




九年 春三月 加耶國王遣使請婚 王以伊湌比助夫之妹送之
9년 봄 3월에 가야국 왕이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으므로, 왕이 이찬 비조부(比助夫)의 누이를 그에게 보냈다.
- 삼국사기 본기 법흥왕 9년





우와 남부대공(..??)과 귀족 영애의 화친혼이라니.. 완전 동양풍 정략결혼, 선결혼 후연애 웹소설 한 편 뚝딱이잖아









는 결혼동맹 6년 만에 파탄난다.


애초에 법흥왕은 가야의 낙동강 유역 땅을 노리고 결혼동맹을 맺은 것이었다.

비조부의 누이를 시집보낼 때 100명의 종을 함께 보냈는데, 이들은 가야에 살면서도 신라 의복을 입고 지냈다. 이에 화가 난 가야의 반(反)신라 세력들이 그들을 쫓아내자





신라: ㅋㅋ 그럼 결혼동맹 깨~~ 우리 딸래미도 다시 보내줘~~~


하며 왕비가 된 비조부의 누이를 강제로 데려가고, 이 과정에서 가야연맹의 8개 성을 함락시켰다 (...)

이뇌왕은 백제-신라의 다굴 정세 속에서 친(親)신라 정책을 펼쳤다가 마누라도 빼앗기고, 가야 연맹의 맹주 자리도 빼앗기고... 가야 멸망의 스타트를 끊은 왕이 되어버렸다






가라왕(加羅王)*이 신라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드디어 아이를 가졌다. 신라가 처음 여자를 보낼때 100인을 아울러 보내 그녀의 시종으로 삼았으므로, 받아들여 여러 현에 나누어 배치했는데, 신라의 의관을 입도록 하였다. 아리사등은 그들이 복장을 바꾸어 입었다고 성내며 사자를 보내 돌아가게 하라고 시켰다. 신라는 크게 부끄러워 그녀를 도로 돌아오게 하려고 했다.
"전에 그대가 장가드는 것을 받아들여 나는 즉시 혼인을 허락했으나, 지금 이미 이처럼 되었으니 왕녀를 돌려주길 바라오."
가라(加羅) 기부리지가(己富利知伽)*가 대답하였다.
"부부로 짝지워졌는데 어찌 다시 헤어질 수 있겠소? 또한 아이가 있으니 그를 버리면 어디로 가겠소?"
결국 (신라는) 지나가는 길에 도가(刀伽), 고파(古跛), 포나모라(布那牟羅)의 세 성을 함락시키고 또한 북쪽 변경의 다섯 성을 함락시켰다.

* 가라왕, 가라 기부리지가 : 대가야 이뇌왕


 - 일본서기 계체기 23년(529년)








결말은 법흥왕 조카(진흥왕) 대에 대가야 박살나고, 졸지에 엄마 뺏겼던 월광태자가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가 되며 마무리





➌ 진정한 배신의 서막

사실 1,2번은 3번 쓰려고 모은거임



나제동맹 요약 짤

1번에서 맺은 나제동맹(433년), 서로 좋아서 맺은 거 아니다
백제와 신라는 무려 50년 대부터 싸운 놈들이다
AD 50년 말하는거임, 신라 4대 왕부터 싸움



믿음의 5세기(부제: 타도 장수왕)

하지만 의외로 이 동맹은 공통의 적인 고구려가 막강했던 5세기엔 예상보다 친밀했다

  •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증조할아버지 복수 성공) 수도인 위례성을 함락시켰을 때 신라가 지원군을 보내 간신히 망국을 막음
  • 웅진 천도 이후 백제 동성왕과 신라 소지왕은 결혼 동맹을 맺어 나제동맹을 더욱 돈독히 함(이뇌왕: 야 이.....)
  • 고구려 장수왕이 신라 때려팰 때 백제가 구하러 감 -> 신라가 나름 반격한다고 고구려 치러 가다가 오히려 고구려한테 쫓기는 신세가 됨(...) -> 백제가 구하러 가서 간신히 위기 모면 -> 곰곰히 생각해보니 백제 설치는게 짜증나는 고구려가 백제 때리러 감 -> 신라가 또 백제 구하러 감 -> (무한반복)
     


ㅠ_ㅠ 둘이 진짜 찐친됐겠는데??





파탄의 6세기

고구려의 위세가 약해진 6세기부터는 50년부터 싸운 짬밥 제대로 들어낸다. 각자 나라가 안정돼고 중흥기, 전성기를 이끌 지도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백제 대표: 무령왕, 성왕
신라 대표: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찐 네임드)





ROUND 1 : 가야 연맹의 주인은 나야 나

이하 생략
(이뇌왕: ........................)





ROUND2 : 아 얘네? 우리 속국ㅎ드립

백제는 중국 양나라로 향하는 배에 신라 사신을 함께 태워줬는데,
당시 신라는 지리 상 중국과 멀어 교류가 적었으므로 사신이 중국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백제에게 통역을 맡겼더니 제멋대로 통역하여
신라는 백제 속국이며 문자가 없고 문화도 뒤쳐지는 나라로 알려준다



신라: 안뇽 난 한반도 동쪽에 있는 신라라고 하는데 우리 왕은 어쩌고저쩌고..(신라 말)



백제: 안뇽 난 한반도 동쪽에 있는 사라라고 하는데 백제 속국이야ㅎ 백제 짱(통역)
양나라: 올~~ 백제 한반도 짱됐구나? ㅊㅋㅊㅋ~~~
백제: 헤헤 ㄱㅅㄱㅅ


신라: (이놈들 뭐라는거지ㅎㅎ 걍 웃어야겠다)



ㅋㅋ



..??




이 사신들의 모습은 양나라의 양직공도, 당염립본왕회도를 통해 볼 수 있다

물론 백제의 엉터리 번역은 당시 사신단에 고구려 사신이 없어서 가능했고, 훗날 신라가 이 일을 알았는진 알 수 없다. 알았으면 더 힘차게 싸웠을듯
 
 




ROUND3 : 삼국시대 전쟁 트리거, 한강 유역 회복


 

출처 : 뉴스 속의 한국사

삼국은 한강을 사랑해서 명칭도 다 제맘대로 불렀다(...)

나제동맹은 고구려와 돌궐이 싸우는 틈을 타 한강 유역 회복에 성공하고, 이후 백제가 한강 하류, 신라가 한강 상류를 다스리기로 했으나 ...




.
.
.
.
.





신라 : 한산하.... 한산하..... 한산하.........(한강)




백제: 와 일단 욱리하(한강) 가져오긴 했지만 고구려가 우리 가만 안둘텐데... 이거 어떻게 또 방어해...??




진흥왕 : 그럼 신라 다 줘





신라의 한강 상하류 싹쓰리 완.


백제의 우려가 무색하게 고구려는 돌궐과 싸우느라 정신 없었으므로 신라의 한강 유역 차지를 ㅇㅈ해준다

물론 백제가 다 가졌으면




반드시 응징하러 왔을거임

이래서 남의 나라 왕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돼..
원수가 되면 그냥 넘어갈 일도 곱씹어보고 때리러 간다고.....




백제와 신라는 한강 쟁탈 이후로 사이가 틀어졌다가,
백제 성왕이 관산성에서 신라에게 참수당하면서(554년)
...............


진정한 철천지원수가 되어 한 쪽 멸망할 때까지 싸운다

복수, 보복, 다시 생각해보니 승질나 또 때리기, 개빡쳐서 병력 모아 후드려패기, 의자왕: 우리 고조할배 죽인 놈들 가만 안 둬, 김춘추네 예쁜이(딸 고타소, 실제로 이름 뜻이 예쁜이임)죽게 만들기, 백제가 딸랭방구 죽여서(사실 사위가 죽였지만) 각성한 김춘추의 우리 편 포섭하기 대작전, 나당연합, 김법민의 한맺힌 침뱉기 등 . . .




진짜 백제 성왕 전사(554년)부터 백제 멸망(660년)까지 서로를 맹렬하게 혐오한다..
이렇게 나제동맹 결렬을 끝으로 신라의 뒤통수 모음은 해산...




 




놓치면 아까운 TMI 시리즈


/ 그거 그냥 그릇 아니야? /

고구려가 신라에게 준 호우명그릇은 광개토대왕 장례 1년 후 장수왕이 아빠를 기리기 위하여 만든 그릇이다


그릇의 바닥에는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문장으로 딱 10개만 만든 한정판 추모 그릇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신라와 친밀했던 고구려는 호우명그릇을 선물했고, 이후 이 그릇은 1945년 경주의 한 고분에서 발굴된다.




(저승에서 울컥)

신라 너희는 그 그릇으로 시리얼도 담궈먹지 마라......





/ 대가야 이뇌왕과 신라 출신 왕비의 아들 /

이뇌왕과 왕비는 6년의 결혼생활동안 월광태자를 낳았다




마마 잃음 안돼...

마마 잃은 중천공

월광태자는 엄마가 신라로 돌아가고 난 후, 가야의 반(反)신라 세력에 의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대가야 멸망 이후 승려가 되었다.




는 이야기도 있고 대가야의 마지막 왕 '도설지왕'과 동일인물이라 대가야 멸망 이후 신라에 망명하여 장군이 되었다.




음..??

는 이야기도 있고 멸망 이후 평범히 살아남아 후손들(순응, 이정)이 해인사를 창건했다.





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확히 남은 기록은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인근에 위치한 거덕사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고, 말년에는 월광사에서 여생을 보냈다는 내용이다.



"아득한 풍경소리 어느 시절 무너지고 태자가 놀던 달빛 쌍탑 위에 물이 들어 모듬 내 맑은 물줄기 새 아침을 열었네"

월광사 비석에 새겨진 이 문구는 월광태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며, 월광사의 이름을 본 따 이곳의 지명을 월광리라고 지었다고 한다.





/ 백제 성왕과 관산성전투, 그 이후 /

위덕왕은 태자 시절 고구려 장군과 1대 1 결투를 벌여 승리하는 등(백합야전투) 아주 기세등등한 태자였다.

그는 아버지의 신뢰에 힘입어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제-가야-왜 연합군을 꾸려 신라를 침공한다.




아들바보 성왕은 태자를 도우러 군사 50명(진짜 삼국사기 기록임...)을 이끌고 현재의 충청남도 옥천 일대에 위치한 관산성에 이르렀고, 




그리운 아버지 성왕의 모습을 담아 만든 구세관음상

백제 국왕이 직접 출전했다는 소식을 들은 신라는 전력을 다 해 공격하여 마침내 성왕의 목을 베었다.

이후 즉위한 위덕왕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신라에게 복수하고자 했으나, 당시 신라 사기캐 진흥왕이 있어 성공하지 못하고 여생을 마친다.




관산성 전투 1년 전, 결혼동맹을 위하여
신라 진흥왕과 혼인한 백제 성왕의 딸 소비 부여씨

신혼인데 남편이 아버지를 죽임 애 시집 보내놓고 대규모 침공을 계획한 성왕과 위덕왕도 영...


이후 소비 부여씨의 기록은 없으나, 훗날 후백제의 견훤이 자신의 조상으로 내세운 '백숭부인'이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견훤 : 백제향 0.000007% 함유

백숭부인은 백제 왕가 출신으로 진흥왕과 혼인하여 3명의 아들을 낳았으며, 그 중 김구륜이 견훤의 조상이라고 전한다.
시기도 딱 떨어지고 근거도 있으나 소비 부여씨가 자신의 조상이니 백제 왕가를 대표하여 후백제를 세웠다는 주장을 펼치기엔 영.. 촌수가 넘 멀...




/ 진흥왕 할아버지? /


사람들이 상상하는 나제동맹 결렬, 관산성 전투 당시의 진흥왕




나제동맹 결렬 당시 진흥왕은 만 18세였다
2025년 기준 2007년생





이참에 한 명씩 짚어보는 당시 나이

관산성 전투 당시 위덕왕(태자 부여창) 만 29세
2025년 기준 1996년생




대가야 멸망 당시 월광태자 만 33~39세
2025년 기준 1986~1992년생





번외


5만 명을 이끌고 신라 출정한 광개토대왕 당시 26세
2025년 기준 1999년생





끝..!!